오명 건국대 총장은 "인문학과 경영, 자연과학이 융합하는 퓨전학문이 대세가 됐다"며 "고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가르는 현 교육체계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총장은 최근 강영중 대교 회장과의 CEO 대담에서 "대학마다 다양성을 추구해 랭킹이 아닌 색깔로 경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건국대를 졸업한 강 회장은 후배들에게 "대기업에서 부품처럼 일하기보다 중소기업에서 창의적으로 도전하는 젊음이 필요하다"며 "도전정신으로 몰입할 때 지혜가 쌓인다"고 충고했다. 이날 대담은 윤형식 사회부장이 맡았다. 다음은 대담 내용 요약.

■ 사회＝윤형식 사회부장

－대학마다 우수한 인재를 뽑고, 키우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재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명 총장＝대학은 연구도 중요하지만 근본은 올바른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건전한 시민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인성교육이 첫 번째다. 또 모든 학문이 융합되고 있기 때문에 폭넓은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 대학의 100분 100강은 이런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개설한 강좌다. 인문 사회 자연ㆍ공학 예체능 기초소양 등 5개 분야 최고 전문가 100분의 강의를 100분 동안 듣는 것이다. 양식 먹는 법, 휴대폰과 통신에 관한 얘기 등 교양과 인성을 쌓기 위한 100가지 테마를 듣고 나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인재로 크게 된다.

▶강영중 회장＝우리는 논쟁만 할 줄 알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해서 의견을 모아 통합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국제회의를 주재해 보니 어려움이 작지 않더라.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동물농장의 오리처럼 적당히 날고, 적당히 뛰고, 적당히 헤엄치는 인재보다는 재능 있고 특화된 인재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오 총장＝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전공보다 인성을 더 본다고 한다. 전공교육에 앞서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 대학마다 특색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랭킹이 아니라 색깔이 있어야 한다. 성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중ㆍ고교생이 골대 하나가 아니라 10개 정도를 놓고 다양성 경쟁을 해야 한다.

－융합의 시대에 창의적이고 인성이 바른 학생을 키우기 위해 정부와 대학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오 총장＝고교부터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고도의 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고교 문과는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이공계도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많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일본 프랑스 독일의 두 배다. 대학생이 많은 데다 이공계 학생 비율은 미국의 두 배다. 10년, 20년 후면 이공계 졸업생이 사회 곳곳에 진출해야 한다. 기술 트렌드를 모르면 아무것도 못한다. 30대 그룹 임원 승진자의 대략 60%가 이공계 졸업생이다. 이공계생들이 매니지먼트(경영)를 배우는 게 당연한 시대다.

▶강 회장＝지식을 가지고 통합하면서 지혜로움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기업 경영을 할 때도 지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반복되면 체질이 된다. 남들이 볼 때는 이를 감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지혜가 쌓인 것이다.

▶오 총장＝올해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공학과 경영학을 융합한 기술경영(MOT) 과정을 신설했다.

기술경영의 시초인 미국 스탠퍼드대 밀러 교수를 명예학장으로 초빙해 밀러MOT스쿨이라고 명명했다.

경영대에 속해 있지만 신입생을 선발할 때 문과와 이과를 섞어서 뽑았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은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의 미스매칭과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오 총장＝대학 진학률이 84%를 넘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급인력이 양성되고 있다는 증거다. 정보기술 발달과 지식정보사회로 급속히 변해 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고, 인력이 모자라는 곳은 주로 중소제조업이다. 일순간에 해소하긴 힘들지만 정책적인 노력으로 교육 의료 금융 법률 문화 등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강 회장＝지혜는 몰입의 산물이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취업해 부품처럼 일하기보다 중소기업에서 젊음을 마음껏 테스트하며 도전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벤처정신과 창업정신은 시장을 성장시키고 세계 시장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열정과 자신감이 필요하다.

▶오 총장＝평생 직장의 시대가 아닌 만큼 평생 직업을 찾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경기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이나 직장 판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 어려운 환경인 만큼 교수라면 4년 동안 가르친 제자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 나 스스로 외부 강연 등을 하며 건국대 인재 마케팅을 하고 있다. 또 졸업생들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건국엘리트 프로그램 등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졸업생들에게도 개방할 생각이다.

－최근 초ㆍ중ㆍ고교의 학업성취도가 공개됐다. 이젠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또 경쟁에서 뒤처지는 학생을 끌어올리기 위한 공교육 정상화 방안도 필요하다.

▶강 회장＝우리는 교육수요자의 교육서비스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다. 교육서비스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받아야 한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평가받고, 문제가 제기되면 해결해야 한다. 물론 평가 결과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선 안 된다.

▶오 총장＝민감한 정책은 여론에 떠밀리기보다 이후 영향과 대책을 충분히 고심한 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평가는 누구나 다 받아야 한다. 중ㆍ고교도 마찬가지고, 대학 교수 학생 모두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 회장＝공교육 개념도 다시 정립해야 한다. 국공립학교는 공교육이지만 사학에서 설립한 학교까지 공교육이라고 싸잡아서 획일적으로 교육하라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가 넘는다.

교육소비자들의 선택폭을 넓혀주기 위해 사학에 자율성과 창의성을 줘야 한다. 사학을 운영하는 건 돈벌이가 아니라 공익을 위함이다. 경기외고(옛 명지외고)를 인수해 교장ㆍ교사 중심의 학교가 되도록 지원하니 교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학의 국제화 … 영어 일변도서 탈피]

■ 중국 각 省의 상위권 대학과 MOU 맺어

건국대 교정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오명 건국대 총장(왼쪽)과 강영중 대교 회장.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대학이 앞다퉈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대학의 국제화 흐름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

▶오명 총장＝국제화＝영어라는 편협한 사고를 깨야 한다. 영어 외에 중국어 일본 어 스페인어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20년 후를 대비한다면 요즘 들어온 신입생에게는 중국어 교육을 반드시 해야 한다. 중국 각 성(省)의 상위권 대학과 모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 5곳에 한국유학 예과반을 두고 직접 유학생을 데려온다.

▶강영중 회장＝영어 교육은 글로벌화를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글로벌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인 마인드와 콘텐츠다.

▶오 총장＝중국 유학생에게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멘토로 붙여 생활을 돕는다. 우리 대학은 34개국 187개 대학과 MOU를 체결했고, 외국인 학생 수도 7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 1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는 우리 학생도 매년 300명에 이른다.

우리 대학에는 노벨수상자 3명을 영입해 글로벌 랩을 신설했다. 외국의 석학들이 강의 한 번 하고 돌아가는 식이 아니라 우리 대학에 연구소를 두고 실질적인 연구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다문화 국가로 접어들었다. 본지에서도 다문화 사회 정착을 위한 기획과 캠페인을 해나가고 있다. 다문화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강 회장＝다문화 가정의 아이 교육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밝게 자라도록 개방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제2 오바마가 탄생할 수 있다. 대교는 올해부터 외국인 어머니나 아버지를 둔 다문화 가정에 무료로 우리말 교육을 하고 있다.

▶오 총장＝우리 대학도 다문화 시대에 대비한 프로그램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교직과정 학부 학생과 교육대학원 학생들을 일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9개국 국제학교에 파견해 해외 교육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2010학년도부터는 해외 외국인 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차세대 해외동포 전형을 신설하기로 했다.

[황형규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