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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2.03.19]"우리 문화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야죠"
이름
관리자
등록일
2012-03-20

"우리 문화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야죠"

[궁궐 영문 안내서 펴낸 경기외고 학생들]

1학년때 문화재 탐방하며 영어 안내문 오류 발견

주말마다 궁궐서 자료 수집, 하루 3~4시간씩 오류 수정

작업 2년 만에 책으로 출간… 한국 문화 우수성 알릴 것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상(像)을 봤더니 한글 안내문에는 있는 설명이 영어 안내문에는 빠져 있고, 용어도 잘못 사용돼 있더라고요."

경기외국어고 3학년인 여명(18·중어과)양은 1학년 때인 지난 2010년 학교에서 실시한 문화재 탐방 프로그램 ''프라이드 코리아(Pride Korea)''에 참여했다가 영어 안내문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덕수궁 세종대왕상의 안내문에 ''조선왕조''가 ''이씨왕조(Yi dynasty)''로 표시돼 있고, 한글 안내문에는 있는 세종의 재위 연대가 빠져 있었다. 이렇게 찾다 보니 영어 안내문의 오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여양은 "외국인들이 영어 안내문을 보고 내용을 오해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접하지 않을까 걱정됐다"며 "서울의 4대 궁궐에 있는 안내문이라도 오류들을 고쳐보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인 일어과 김지혜(18)양, 손가연(18)양, 임태현(18)군과 영어과 손민아(18)양, 최수영(18)군 등 5명이 의기투합했다. 6명 모두 외국서 살아본 적 없는 ''토종''이지만 힘을 모아 함께 문화재 영어 안내문의 오류들을 고쳐보기로 했다.

1년간의 자료수집과 오류 수정

6명은 지난 2010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재 안내문 자료 수집에 나섰다. 평일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주말마다 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 등 4대 궁궐을 돌며 한글과 영어 안내문을 일일이 사진에 담았다. 내친김에 경희궁과 청계천도 포함시켰다. 각자 맡은 궁궐의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는 데만 한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찍은 사진을 보고 한글과 영어 안내문 사이의 차이와 오류 등을 찾는 과정 또한 주말마다 하루 3~4시간씩 몇 달을 꼬박 매달려야 했다.

경기외고 3학년 학생들이 자신들이 펴낸 궁궐 영문 안내서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임태현군, 김지혜·여명·손민아양, 최수영군. 함께 작업한 손가연양은 수업을 듣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양희동 기자
여명양은 "한글 안내문의 설명은 상세한데 영어 안내문에는 빠진 내용이 많았다"며 "영조·정조 등 조선 왕들에 대한 안내문 설명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데, 왕 이름만 로마자로 써놓아 배경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워 보였다"고 말했다. 영어 안내문이 아예 없거나 직역으로 인한 오류들도 다수 발견됐다. 손민아양은 "창덕궁의 ''몽답정''과 ''숙장문'' 등은 영어 안내문이 없어 새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며 "중요한 문화재들인데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문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했다.

임태현군은 "한글을 그대로 직역한 경우가 많아 외국인들이 잘못 이해할 여지도 있었다"며 "백성(百姓)을 번역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ordinary people이라는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사용해 국민을 뜻하는 subjects로 고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리 고유의 단어라 영어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안내문에 보충했다. 여명양은 "경희궁의 정전(正殿)인 숭정전은 정전(Jeong jeon)이란 단어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외국인들이 알기 어려웠다"며 "고친 안내문에는 정전을 영어로 reception hall(영빈관)이란 설명을 덧붙였다"고 했다.

책으로 엮어낸 고친 안내문들

궁궐의 안내문 자료를 모으고 이를 번역한 학생들은 각자 정리한 내용의 오류를 서로 지적해주며 수정을 거듭했다. 이렇게 수정된 자료는 동국대 영문과 제임스 오 설리번 교수 등에게 감수받았다. 최수영군은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정도로 번역과 영작을 하기엔 실력이 부족해, 유독 내가 맡은 부분에서 지적이 많이 나왔다"며 "감수를 맡은 교수의 거듭되는 수정 요구에 밤새워 고치고 또 고치며 속도 많이 상했지만, 우리 문화재를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일이라 의미가 컸다"고 했다.

2년 가까운 노력 끝에 이들이 만든 안내문 자료들은 ''경기외고생들의 The Guide of Korean Palaces''라는 제목의 312쪽짜리 책으로 엮여 지난달 29일 출간됐다. 궁궐의 각 부속 건물들에 대한 한글과 영문 안내문, 수정한 영문 안내문과 수정 내용의 설명 등을 상세히 담은 이 책은 1차로 300여부가 인쇄돼 인터넷 서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전성은 경기외고 교감은 "학생들이 안내문 번역에 그치지 않고 각자 관심있는 문화재에 대한 소논문까지 책에 수록했다"며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대견해했다. 학생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지만 역사와 영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한 번에 접할 수 있어 학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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