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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경기도 ‘외고·자사고 폐지 선언’ 뒤 첫 외고 입시설명회 가보니
이름
관리자
등록일
2017-06-16

15일 오전 10시, 경기도 수원의 중소기업지원센터 행사장에선 경기외고의 입학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지난 13일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이후 처음 열린 외고 설명회다.
교사들이 번갈아가며 학교 프로그램과 입학요강을 설명하자 100여명의 학부모들은 메모지를 꺼내 분주히 받아적거나 휴대전화로 설명 내용을 녹음했다. 또 화면에 띄워진 설명자료를 일일이 촬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있는 학부모들의 표정은 대체로 어두웠다. 행사장 앞자리에 앉아 교사들의 설명을 꼼꼼히 메모하던 조모씨(41·경기도 수원)는 “딸이 중학교 내내 특목고에 가겠다며 친구와 놀지도 못하고 학원과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외고가 없어질 거란 얘기를 듣고 울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바뀐 교육 정책에 실망한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이재정 교육감의 외고·자사고 폐지 선언 이후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했던 중학생과 학부모들이 향후 진로를 두고 큰 고민에 빠졌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강한 우려와 불만을 나타냈다. 이모씨(43·경기도 수원)씨는 “큰 아이를 일반고에 보낸 뒤 실망감이 너무 커서 둘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특목고나 자사고에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몇년째 준비해왔다”며 “일반고에 실망한 학부모에게 외고나 자사고라는 선택지를 빼앗아버리는 게 바람직한 건지 교육감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설명회가 끝나자 교사들과 재학생 학부모가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중3 자녀를 둔 박모(37·경기도 수원)씨는 상담 도중 “입학 후 경기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돼도 재학생들에게 현재 수준의 교육을 유지할 수 있냐”고 캐물었다. 상담 도우미를 맡은 경기외고 2학년 학생의 부모는 “지난해엔 합격 가능성, 진학 후 적응 여부, 기숙사 생활을 주로 물었는데  올해는 ‘외고가 유지될 수 있을지’ ‘다니던 중 일반고로 바뀌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주로 질문하더라”고 전했다. 

현재 경기외고를 포함해 경기도 내 외고 8곳과 자사고인 용인외대부고는 2020년에 재지정 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올해 중3 학생이 경기외고에 입학하면 재학 도중엔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낮지만, 학부모들은 "그사이에 또다시 정책이 변할수 있는 것 아니냐"며 불안한 반응이다.
 
 경기외고는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을 19명 배출했다. 경기도내 8개 외고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또 이 학교는 국내 고교 중 유일하게 국제표준교육과정인 'IB디플로마'를 운영해 해외대학 진학도 활발하다. 한 재학생 부모는 “단순히 입시에 강한 학교가 아니라, 수준높고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 운영해 중학생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학교"라며 "일반고로 전환되면 이런 교육적 성과들이 사장될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경기외고 교사들은 "구설수에 오를까 두렵다"며 말을 삼가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런 현상은 경기도 내 다른 특목고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모 외고 교장은 "갑작스레 일반고로 전환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외국어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를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외고와 자사고 만을 문제삼는 데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경기도의 한 자사고 관계자는 "경기도에 자사고와 외고는 10곳밖에 안된다. 사실 내신 성적 우수자를 가려 뽑는 비평준화 지역의 일반고가 수십곳인데, 이들은 문제삼지 않고 자사고·외고만 문제삼는 건 '교육 포퓰리즘'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재정 교육감의 외고·자사고 폐지 계획이 절차적으로 정당한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5년 단위로 이뤄지는 재지정 심사는 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을 잣대로 학교를 잘 운영하는 지 여부를 심사하자는 취지인데, 평가도 하기 전에 ‘떨어뜨리겠다’고 공언한다면 이를 어떻게 정당한 평가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지적했다.   
 외고·자사고 폐지 바람이 전국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른 지역의 학교들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정부·교육청의 권유로 자사고 지정 요건을 맞추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학교 시설을 개선하고 교사 수도 늘렸는데,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까지 뒤바꾸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전국자사고협의회장인 오세목 중동고 교장은 "전국 자사고들이 공동대응하기로 협의했다. 다음 주중에 전국 자사고 관계자 대책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문가와 교육단체들은 경기도에서 촉발된 외고ㆍ자사고 폐지 논란에 대해 “지나치게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새 정부나 진보 교육감이 그동안 자신들이 비판해온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되풀이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공약을 임기 내 실현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자사고 지정을 남발했다가 자사고와 일반고 모두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배 교수는 “교육 정책은 면밀한 현장 검토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속에서 지속가능하다”며 “새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도 ‘나만 옳다’는 자기 확신이나 정치적 이념에 휘둘려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단체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의 최미숙 상임대표도 “어떤 정책을 신설하거나 폐지할 때는 반드시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게 기본인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폐지 논의에 앞서 이들 학교의 성과와 문제점부터 점검해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외고ㆍ자사고는 학생에게 다양한 수업ㆍ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우수 학생을 ‘독점’했던 문제점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특목고ㆍ자사고의 ‘특권’처럼 여겨졌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되, 이들의 교육과정과 노하우를 한층 발전시켜 일반고에 확대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박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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